[시론] 실리·형식 다 챙겨야 할 美 국빈방문

입력 2023-04-19 18:02   수정 2023-04-20 00:45

지구촌 정상회담이 만개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멈춰선 대면 외교가 기지개를 켜면서 각국 정상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대전환 시대에 ‘외교는 너무 중요해서 외교관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자주 만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정상 간 만남이 글로벌 현안 해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통독 과정에서 보여준 정상외교는 이를 웅변한다. 돌이켜보면 독일 통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주변 강대국들의 의구심과 견제는 대단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반대가 심했다. 먼저 콜 총리는 통일 독일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잔류하는 것을 조건으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동의도 얻었다. 동독 주둔 소련군 철수 비용과 주택 마련 기금 지원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통일에 이르는 10개월 동안 콜은 부시와 여덟 번, 미테랑과 열 번, 고르바초프와 네 번 회담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구축한 신뢰를 바탕으로 장애를 극복했다. 정상회담은 역사를 만들고 세계를 움직인다.

“실패로 끝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외교가의 속설과 달리 실패한 회담은 많다. 회담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의전이다. 정상회담에서 의전 결례는 국가 존엄성과 주권에 대한 모독으로 직결되며 여론 악화나 긴장 고조라는 후유증을 낳는다.

의전 실수가 없는 정상회담은 많지 않다.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2006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 때 환영 행사에서 미국 측 사회자가 “신사숙녀 여러분, 대만 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가 연주됩니다”라고 말했다. 중국을 ‘People’s Republic of China’가 아니라 ‘Republic of China’로 부른 것. 중국 측은 거세게 항의했고 미국은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통역도 의전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분야다. 1977년 카터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했다. “폴란드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카터의 말에 폴란드인들이 경악했다. 통역이 “나는 폴란드 여인에게 욕정을 느낍니다”라고 전했기 때문.

정상회담에서 결례는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 회담 성과를 희석하기도 한다. 2006년 G8 정상회의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어깨 안마를 했다. 부시를 ‘몸 더듬기 최고사령관’으로 비꼬는 비디오가 인터넷에 퍼졌다.

의전의 기본은 상대방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199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츠야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방한했다. 호텔 측이 환영의 뜻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자 이스라엘 경호팀이 항의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몰라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국가 의전은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외교적 수단이다. 각국은 의전을 통해 의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점에서 의전은 고도의 정치 행위다. 2016년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용기가 항저우 공항에 도착했을 때 중국 측은 이동식 트랩을 제공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뒷문을 통해 내렸고 레드카펫도 밟을 수 없었다. 미국 측은 의도된 결례라고 항의했다.

정상회담에서 의전은 중요하다. 협상 내용과 한계를 규정짓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회담 결과다. 의전이라는 형식이 실리보다 우선할 수 없다. 이달 말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내용과 형식 면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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